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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5-16 00:49

전, 국가정보대학원 김영환 교수의 제2차 대국민 안보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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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2차 대국민 안보보고서(총14쪽)

前 국가정보대학원 교수 김영환

저는 지난 1월 15일 ‘대국민 안보보고서’를 인터넷상에 공개함으로써
「장거리 지하터널을 이용한 북한의 기습남침 임박」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 직후 북한은 “전면대결태세 진입”을 선언(1.17)한데 이어 ‘전군에
대한 전투준비태세 명령’을 하달(3.9)함에 따라 북한의 정규군은 물론 노농 적위대(민방위조직), 교도대(예비군), 붉은 청년근위대(학생군사조직)까지 전투준비에 돌입하는 등 남침준비를 완료한 상태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남침에 따른 미국의 개입가능성을 사전차단하기 위한 장거리 미사일까지
발사함으로서(대미 핵공격능력 과시) 오늘날 한반도 안보현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러함에도 우리 정부와 언론 등은
북한의 미사일발사 이후, 마치 현 위기상황이 종료되기라도 한 듯이 또
다시 국내 정치 문제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편 저는 지난번에 ‘대국민 안보보고서’를 공개할 때 동일한 보고서를 국정원 지휘부에도 제출했었습니다. 하지만 국정원 지휘부는 저의 보고에 대해 “정신 나간 주장”이라는 공식 검토의견을 통보(2.5)한데 이어, ‘임의로 전쟁을 경고했다’는 이유로 저를 강제해직(2.12)시켰습니다. 또한 국방부 관계자도 저에게 직접 항의성 전화를 함으로써(2.2) 장거리 지하터널의 존재를
인정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확인시켜주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오늘날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장거리 지하터널을 이용한 북한의 기습남침
임박」을 경고하거나 그에 따른 대책을 강구할 정부기관이나 부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안보현실을 있는 그대로 우리 국민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그에 따른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저는 또 다시 대국민 안보보고서를 공개하게 된 것입니다. 즉, 더 이상 ‘방위태세가 튼튼하다’는 우리 국방부의 주장을 믿고 있다가는, 과거에 “경제의 펀더멘틀이 튼튼하다”는 재경원 주장을 믿다가 IMF 위기를 맞았듯이, 이번에는 안보분야의 IMF, 즉 과거 임진왜란과 6.25 등과 같은 미증유의 재난을 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에 지금
당장 행동해주실 것을 호소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보고서 목차】

1. 긴박한 상황 對 안일한 대응-------------------------------2

2.「전술(戰術) 땅굴」對「전략(戰略) 지하터널」------------------2

3.「산업용 지하터널」對「군사용 지하터널」-------------------- 6

4. 극소수 군인의 안보 對 전체 국민의 안보---------------------13

1. 긴박한 상황 對 안일한 대응

지난 5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계기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번의 로켓발사는 기존의 도발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그간 북한이 말로만 했던 “불과 불, 철과 철이 맞부딪치게 될 전쟁
접경”, “가장 무자비하고 단호한 결판, 실천으로 보일 것” 등과 같은 남침협박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군사개입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무력시위임과 동시에 장거리 지하터널을 통한 기습의도를 숨길 목적으로 우리의 시선을 허공에 고정시키려는 성동격서 전법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방부는 여전히 가장 시급한 과제인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한 대책을 외면한 채 “최단 기간내 승리” 등과 같은 공허한 주장만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마치 지난 6.25 직전에 국방부가, ‘민심안정’을
기한다는 미명하에 실제로는 아무런 대책도 없으면서 말로만 다음과 같이 북진통일을 호언장담했던 전례를 반복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그 방법(북진통일)은 군기밀이라 언급할 수 없으나, 백번 승산이 있으니
국민은 안심하라. 그리고 38선이 터지는 그 날만 두고 보라...”

2. 「전술(戰術) 땅굴」 對 「전략(戰略) 지하터널」

물론 오늘날의 상황은 과거 6.25때와는 전혀 다르며, 또한 군사력 면에서도 우리가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기에, 현재와 같이 우리 군이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여 비상경계 태세까지 유지하고 있다면 섣불리 남침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즉, 이번의 로켓발사 등은 ‘일전(一戰)을 불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한-미 양국 등으로부터 정치․경제적인 양보를 받아내기 위한 벼랑 끝 전술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쟁을 원치 않는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본 결과(mirror-imaging)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김정일 시각에서 본다면, 현재와 같은 북한의 대내외 상황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체제 또는 정권이 붕괴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비록 승산은 희박하다할지라도 남침을 감행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가 경고하고 있는 장거리 지하터널 문제에 대해서도, 국방부가
진작부터 ‘단거리 땅굴을 이용한 북한 특수부대의 후방 침투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에 따른 대책까지 수립한 상태라면, 크게 염려할 필요 없다는 반박도 가능할 것이다. 즉, 장거리 지하터널이나 단거리 땅굴 모두 지하갱도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만큼 국방부가 별도로 지하터널에 대한 대책수립을 외면했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기존의 단거리 땅굴은 고작해야 전술(戰術) 차원의 지하갱도에 불과한 반면, 장거리 지하터널은 전략(戰略) 차원의 지하갱도라는, 결정적 차이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전술땅굴이란 휴전선 일대(한강 이북지역)에서 전개될 개별 전투의 승리를 위한 지하갱도를 말하며, 전략지하터널은 개전과 거의 동시에 우리의 심장부를 점령함으로써 일거에 전쟁자체의 승부를 결정짓기 위한 지하갱도를 의미하는데, 이처럼 기존의 전술땅굴을 전략지하터널로 확대발전시킨 것의 군사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히틀러의 전격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전격전이야말로 모두들 전술무기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던’ 탱크를, 전략무기로 ‘통 크게’ 활용함으로써 일거에 전쟁자체의 승부를 결정지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에 독일만 탱크를 보유했던 것은 아니며 또한 독일제 탱크의 성능이 가장 우수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우수한 탱크는 프랑스제였으며, 그에 비해 독일제 탱크는 한
세대 뒤떨어졌다고 할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프랑스 국방부는 “최첨단 무기와 세계최고의 방어요새를 보유하고 있다”고 큰소리쳤으며, 참모총장 가믈랭은 전쟁발발(1940.5) 3개월 전까지도 “만일 독일이 우리를 침공하는 호의를 베풀어준다면 10억 프랑을 주겠다”며 조롱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독일군 수뇌부도 처음에는(폴란드 점령
직후) 히틀러의 프랑스 침공계획에 대해 “무모한 전쟁”, “범죄와 다름없는 전쟁계획”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히틀러는 이와 같은 전력상의 열세를, ‘전격전’이라는 작전개념상의 우위를 통해 극복했던 것이다. 즉, 독일은 탱크의 기동성을 높일 경우, 전쟁자체의 승부를 조기에 결정지을 수 있는 전략무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위해 탱크의 화포와 장갑을 희생하는 대신 탱크의 속도를 높였던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 등은 탱크에 대해 개별 전투(참호전)에 있어 보병의 진격을 지원하는 전술무기 정도로 인식한 나머지, 탱크의 기동성보다는 장갑과 화포를 강화하는 데에 치중했다. 그 결과 프랑스군은, 독일군이 침공할 것이라는 사실은 물론, 심지어 탱크를 앞세우고 침공할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미리 알고 그에 따른 ‘완벽한’ 방어계획까지 수립했음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독일군 기갑부대의 신속한 공격 앞에 여지없이 붕괴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무기에 대한 사용 방법상의 혁신을 통해 상대를 기습하는 것을 ‘작전교리상의 기습’(doctrinal surprise)이라고 부른다.

한편 ‘전격전 신화’의 배경에는 히틀러가 상대방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는’ 공격방법을 선택한 것도 또 다른 결정적 승인(勝因)으로 작용했는데, 이는 그가 독일군 기갑부대로 하여금 ‘탱크는 절대 통과할 수 없다’는 아르덴느 삼림지대(森林地帶)를 돌파토록 함으로써, 영-프 연합군의 배후를 기습한 것을 말한다. 아르덴느 삼림지대란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나, 프랑스군 지휘부는 ‘나무와 계곡 등으로 인해 탱크는 통과할 수 없다’고 굳게 믿었기에 이 지역에 대한 방어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프랑스군 내부에서 이 지역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 일부 프랑스 장교 등이 그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지만, 국방장관 페탱 원수가 1934년 상원 육군위원회에 출석, ‘이 지역은 탱크가 절대 통과할 수 없다’고 천명한 것을 계기로 프랑스군 내에서는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던 것이다. 즉, 프랑스
국방부는 ‘독일군 기갑부대가 아르덴느를 통과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가설(假說)을 공식입장으로 정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1938년(전쟁 2년 전) 제2군 사령관 프레틀라 장군이 실제훈련 결과를 바탕으로 ‘독일군이 아르덴느로 기습할 경우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음’을 상부에 보고했을 때, 참모총장 가믈랭은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보고내용을 철저한 비밀에 부치도록 명령했는가 하면 그를 문책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침공직전 주(駐)스위스 프랑스 무관이 독일군 주력부대가 아르덴느 방향으로 공격해 올 것이라고 보고한 내용과, 영국 정찰대가 독일군 탱크들이 아르덴느 지역에 집결중임을 발견한 사실 등도 끝내 프랑스 최고 지휘부에는 전달될 수 없었다. 그 결과 아르덴느 지역을 통한 히틀러의 기습계획은 이미 성공을 예약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보다 확실한 기습효과를 노리고 상대를 기만했다. 즉, 조공(助攻:보조공격)부대로 하여금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침공토록 함으로써, 마치 제1차 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북부를 노리는 것처럼 위장했다. 이에 영-프 연합군은 정예부대를 벨기에 영토로 진격시킴으로써 보다 남쪽의 아르덴느 지역을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켰다. 이틈을 노리고 독일군 주력 기갑부대가 ‘나무를 베어내면서’ 아르덴느 삼림지대를 돌파하자, 연합군은 ‘절대 불가능한’ 방향에서 출현한 독일군의 공격과, 미처 대처할
틈도 없을 정도로 신속한 독일군 기갑부대의 진격 속도에 놀란 나머지 모두들 도망가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이처럼 히틀러의 전격전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설명한 것은, 오늘날 우리의 안보 상황이 패전 직전의 프랑스와 비슷한 면이 적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즉, 김정일을 대표하는 정치적 구호가 ‘속도전’(전격전의 북한식 표현)인데다, 그가 굴착한 장거리 지하터널 역시 ‘작전교리상의 기습’(전술 땅굴⇒전략지하터널)을 노린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군도
지난 1992년 국방장관 명의로 기자회견을 한 것을 계기로,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장거리 지하터널을 이용한 북한의 기습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공식입장을 고수해온 점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군도 배후의
기습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데, 일례로 과거 6.25 기간 중에 있었던 현리전투(1951.5)의 경우, 우리 군은 미국의 군사원조 덕에 상대보다 압도적인 화력과 장비를 보유한 상태였음에도, 고작 1개 대대 정도의 중국군이 배후(오마치 고개)에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1개 군단이 순식간에 붕괴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군단장은 비행기타고
도망갔고 사단장 등은 계급장 떼고 사병들 틈 속에 숨어 달아났을 정도로
혼비백산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의 군 지휘관들이 겁쟁이였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는데, 그들은 이전의 영천대첩(군단장)과 춘천대첩(사단장)의 주역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행동은 기습을 당하면
누구나 겪기 마련인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심리적 충격효과’를 노리는 전격전(속도전)의 경우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오늘날의 국방부 대책에 대해 ‘안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따라서 국방부는 더 이상 ‘북한군이 장거리 지하터널로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가설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장거리 지하터널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고 그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일에게 「승산=0」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만이 임박한 남침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손자병법의 가르침은 오늘날의 우리 안보현실에 비춰볼 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군사를 쓰는 법은, 적이 (장거리 지하터널로)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적이 (장거리 지하터널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내가
조치한 바를 믿는 것이다(故用兵之法... 無恃其不攻 恃吾有所不可攻也)』

3. 「산업용 지하터널」對「군사용 지하터널」

하지만 현재와 같이 장거리 지하터널의 길이와 구조 등에 대한 기본정보조차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대책을 수립할 것인가.

이와 관련 우선 김정일의 입장에서 기존의 단거리 땅굴에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부터 검토한다면 대책수립이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할 것이다. 즉, 기존의 단거리 땅굴로는 한강 이북지역에 대한 기습은 가능해도, 이후 남진하는 과정에서 북한군은 과거 6.25 때처럼 또 다시 한-미 연합공군의 공습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거리 지하터널은 우리의 후방 지역 어디까지 들어와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과거 월남전의 경험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데, 월남전의 경우 월남공산군이 막강한 화력을 보유한 미군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정글이 아닌, 땅굴」을 이용한 게릴라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땅굴 덕분에 월남공산군은 미군의 공습 등에도 불구하고 병력과 군수품을 ‘안전하게’ 목표지점까지 수송할 수 있었기에 승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즉, 월남의 땅굴은 단순한 지하갱도가 아니라, 다수의 군사적 거점을 서로 연결해주는 일종의 지하 네트워크로서 기능을 했다는 것인데, 그중 대표적인 쿠치 땅굴의 경우, 캄보디아 국경에서 사이공(현 호치민시) 외곽을 연결하는 총 연장 250km의 장거리 땅굴로서, 내부에 무기고 및 탄약고는 물론 식당, 병원, 극장(정치교육용)까지 갖춘 일종의 지하 소도시 역할까지 담당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북한군도 비록 극소수이기는 했으나 월남전에 참전했으며 그 중에는 땅굴 요원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즉, 김일성이 지난 1971년 ‘땅굴굴착’ 지시를 내리게 된 배경에는 월남전의 경험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월남의 공산게릴라들이 1968년 장거리 땅굴을 이용한 ‘구정공세’를 통해 승기를 잡기 시작한 직후였음). 하지만 김일성의 땅굴은 곧 우리 군에 의해 발각됨으로써 ‘결정적 기습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그 아들 김정일은 기존의 단거리 땅굴을, 전략차원으로 ‘통 크게’ 확대발전시킨 것이 바로 장거리 지하터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해, 월남의 장거리 땅굴을 ‘통 크게’ 확대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다면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도 최소한 휴전선으로부터 250km 이상은 남진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김정일 입장에서 보았을 때, 월남공산군이 수작업(手作業)으로 250km의 장거리 땅굴을 팠다면, 첨단 장비(TBM)를 보유한 북한군이 그 정도를 굴착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전문가에 따르면 기술적인 문제는 없다함). 그런 점에서 지난 2002년(약 7년전)부터 경기도 화성 등의 땅속에서도 ‘TBM 작동음’은 물론 심지어 ‘전화 받는 사람목소리’까지 들렸다는 민간인들의 신고가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 동안 단 한 개의 장거리 지하터널조차 ‘우연히’ 발견되지 않았을까. 진작부터 다수의 장거리 지하터널이 우리의 후방 깊숙한 곳에까지 들어와 있었다면 그 동안 남한 사회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지하철 공사 등 각종 개발사업에도 불구하고 왜 ‘우연히’ 발견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무엇보다도 장거리 지하터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위치, 예를 들어 지하 100m 이하 지점을 통과했을 가능성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평양 지하철이 지하 100m 지점에 건설되었다는 사실과, 기존의 단거리 땅굴(제2, 제4땅굴)조차 지하 145-160m 지점에서 발견된 전례 등이 있기 때문인데, 그랬다면 장거리 지하터널이 그동안 우리의 개발사업 현장(지하철은 지하 20-30m 지점에 위치)에 의해 발견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할지라도 장거리 지하터널의 출구를 굴착할 때에는, 갱도막장이 지표면에 접근할 수밖에 없기에 그 과정에서 우리의 지하철 공사 및 대형 빌딩의 기초공사 현장 등과 조우할 가능성은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의문과 관련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장거리 지하터널의 출구부분이, 다음의 그림과 같이 지표면과 곧바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부터 극복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형태의 출구는 독가스(공기보다 무거움) 공격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북한군이 땅 속에서 ‘기어 올라오는’ 형태가 됨으로써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갱도가 지표면에 접근할수록 천장이 얇아지게 됨에 따라 공중폭격에 의해 쉽게 붕괴될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북한군이 땅속에서 기어 올라올 것’으로 지레짐작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하철과 같은 산업용 지하터널의 구조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해 군사적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특히 과거 월남군이, 쿠치 땅굴을 구조를 ‘교묘하게’ 굴착함으로써 미군의 독가스 및 물(水) 주입공격을 무력화시킨 전례가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전례를 잘 알고 있는 김정일이라면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한 가스 공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그가 다음의 그림과 같이 지하터널의 출구부분을 굴착함으로써, 가스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물론 북한군으로 하여금 우리 군의 ‘발밑에서 올라오도록’ 하지 않고 ‘머리 위로 내려오게’ 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다음의 그림은 외국 갱도 전문가의 의견 등을 참고하여 그린 것임).

게다가 이러한 형태의 출구는, 천장이 두터운 암반층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적이 드문 산속에 출구가 위치할 경우 지하철 및 상하수도 공사 현장과 조우할 가능성도 거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상과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은, 최소한 휴전선으로부터 남방 약 250km 내외에 걸친 지역에까지 남진한 가운데, 출구는 해당 지역 내에 위치한 높이 100m 이상 되는 산 중에서, 주요도로와 접해있는(신속한 기동을 위해) 산속에 개척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게다가 그런 곳에는 거의 예외 없이 우리의 각급 군부대가 주둔(산기슭)해 있을 뿐만 아니라, 레이더 및 통신기지, 미사일 기지도 배치(산 정상)되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우리 군은, 미군 전쟁 지휘소가 있는 청계산과 미2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소요산, 그리고 수도방위사령부가 있는 관악산 등에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의 출구가 개척되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청와대의 뒷산격인 북악산 또는 북한산에도 장거리 지하터널이 들어와 있을 가능성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는데, 김정일 입장에서 볼 때 청와대만큼 최우선적인 타격목표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은 지난 1968년에 ‘1.21 사태’를 도발한 전례가 있기에 더욱 그러다. ‘1.21 사태’란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의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을 말하는데, 당시 국군 복장을 한 31명의 무장게릴라들은 황해도 연산을 출발, 휴전선-법원리(파주시)-노고산(구파발 부근)-진관사(진관외동)를 거쳐 북한산(비봉)에 도착한 다음, 대한민국 수도의 한복판을 ‘보무도 당당하게’ 2열종대로 행군함으로써 청와대 앞 500m 지점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상한 군인들’에 대한 신고를 받고 출동한 종로경찰서장에 의해 검문을 받게 되자 무고한 시민 등을 향해 총을 난사하면서 도주한 것이 바로 1.21 사태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때에도 우리 군은 북한의 목표가 청와대인 줄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이미 무장공비에 대한 신고를 받고 비상경계령까지 내린 상태에서, 게다가 북한산(당초 목표는 북악산까지 산악구보로 접근하는 것이었음) 등지에서 공비들이 흘리고 간 탄피와 음식물까지 발견했음에도 청와대가 목표인줄은 ‘감히’ 생각조차 못했다고 하는데, 다음은 당시의 국방장관 회고내용이다.

“(법원리에서) 서울 진관외동의 진관사까지 산악 코스로 행군을 하면 해병대도 이틀(48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미 진관사를 거쳐 북한산 비봉의 승가사 아래까지 도착(10시간 만에 주파)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는 기겁을 했지요. 중무장하고 야간 산악 행군으로 북한산까지 올 수 있다는 건 제 군대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철통같은 방어선을 펼쳤는데 하루 만에 그 지역을 통과하면서 유실물(실탄과 탄창 등) 흔적을 남겨두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전례가 있기에 오늘날 국방부는 북한의 남침용 지하갱도에 대해, 고작 휴전선 부근에만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이미 북악산 또는 북한산에까지 도달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변에 산이 없는,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 보았을 때 최우선 타격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 국방부와 공군기지 등에 대해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은 어떻게 접근했을까. 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땅 밑에서 곧바로 상륙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때에도 상기 두 번째 그림과 같이 인근의 산속에 있는 대형 터널에서 분기(分岐)하는 ‘보다 작은’ 지하터널을 통해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 경우 기습에 실패했다하더라도, 해당 출구부분만 점령당할 뿐 출발지 산속에 위치한 지하터널은 방어하기에 용이할 것이기 때문이다(북한군이 지하세계의 고지를 장악한 형국).

이처럼 청와대 및 국방부, 그리고 각급부대와 공군기지 등으로 연결되어 있는 장거리 지하터널을 통해, 북한군 특수부대(총18만 명)와 기갑부대 등이 국군복장을 한 상태에서, 우리 군이 잠들어 있는 틈에 ‘기습상륙’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지난 2월 16일 김정일이 자신의 생일을 맞아 “장내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며 자신감을 보인 적이 있다는 사실과, 북한의 언론 매체도 다음과 같이 승리를 호언장담한 사실 등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3월 15일자 노동신문).

“우리 군대의 대응조치에는 한계가 없고 예측할 수도, 피할 수도 없으며... 우리 혁명무력은 수십 년 세월 다져온 모든 군사력 잠재력을 총동원하여 적들에게 천백 배 무자비한 섬멸적 보복타격을 가하고 최후 승리를 이룩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 가공할 위력의 기습방법일수록, 그만큼 취약점도 정비례하기 마련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히틀러의 전격전의 경우에도 독일군 기갑부대 등은 아르덴느 삼림지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인해 수십 km에 달하는 극심한 교통체증에 갇히게 되었고 그 결과 프랑스 공군의 공습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프랑스 국방부의 확고한 ‘공식입장’(아르덴느에 대한 돌파는 절대 불가능) 덕분이었는데, 다음은 당시 작전에 참가했던 독일군 장교의 회고 내용이다

“단일 도로상에 이토록 천천히, 밀집대형으로 기동하고 있는 우리 사단은 적 공군에게 가장 좋은 표적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프랑스 정찰기는 단 한 차례도 출현하지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즉, 장거리 지하터널의 경우에도, 기존의 단거리 땅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가공할 위력이 있는 만큼, 그에 정비례해서 단거리 땅굴에 없는 치명적 약점도 있을 수밖에 없음에 착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그 동안 장거리 지하터널 징후가 발견된 지역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땅 속에서 찬바람이 올라온다’는 신고가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현상은 외부에서 송풍기 등을 이용하여 지하터널 내부로 공기를 강제 주입한 결과, 지하터널 내부의 기압이 지표면보다 높아짐에 따라 발생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즉, 장거리 지하터널의 경우 갱도의 길이가 길어짐에 따라 그만큼 환기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현상은 환기구를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에(지표면은 남한 영토) 지하터널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아울러 그 동안 김포 및 연천, 그리고 화성 등지의 땅속에서 갱차 소리와 함께 “웅-” 하는 고압 전기 유도음이 들린다는 신고가 있었음에도 주목해야 한다. 갱차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철로가 부설되어 있다는 것이며, 고압 전기 유도음이 들린다는 것은 고압 전선이 매설되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징후들은 장거리 지하터널 내부에 전동차가 운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라는 것이다.(내연기관은 매연 등으로 인해 환기문제를 더욱 악화시킴).

그렇다면 우리의 대책은 당연히 이와 같은 장거리 지하터널의 치명적 약점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즉, 북한군이 상륙하는 즉시 지하터널 내부를 향해 소이탄(燒夷彈) 등을 이용한 화공(火攻)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출구 부분의 갱도는, 오히려 훌륭한 굴뚝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지하터널 내부는 화재와 연기 발생, 그리고 그에 따른 산소부족 및 고열(高熱)등으로 인해 아비규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재발생으로 인해 지하터널 내부의 고압전선마저 합선된다면, 정전사태까지 발생함에 따라 터널내부에 대한 공기공급은 물론 전동차 운행까지도 중단될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때 북한군이 입게 될 피해규모는 지난 2003년 2월에 발생했던 대구 지하철 참사를 생각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당시 2급 지체 장애인이 전동차 내부에 고작 10ℓ 밖에 안 되는 인화물질에 불을 붙였음에도 무려 300명 가까운 사상사가 발생하는 엄청난 재앙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에도 화재로 인한 정전사태마저 발생함에 따라 터널 안은 암흑세계로 변했고 그 결과 승객들은 출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했으며, 그런 상황에서 때마침 반대편에서 접근하던 또 다른 전동차에도 불이 옮겨 붙음에 따라 전동차 12량이 순식간에 소실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군의 각급부대는 이제부터라도 주둔지 인근의 산기슭, 부대 주변의 인적이 드문 곳, 그리고 하수도 등을 통해 국군복장을 한 북한군 특수부대요원들이 ‘상륙’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중 하수도의 경우, 과거 스탈린그라드 전투(독일군의 구소련 침공) 당시 기습통로 역할을 한 적이 있다는 점과, 특히 구소련의 군사교리를 도입한 북한도 평양 시내의 하수도를 군사기밀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4. 극소수 군인의 안보 對 전체 국민의 안보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우리 국방부가 필자의 주장대로 장거리 지하터널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강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오랫동안 고수해온 공식입장을 하루아침에 번복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다, 그럴 경우 국방부의 권위 실추는 물론 그 동안 민간인들의 신고 내용을 고의로 묵살 내지는 은폐해 온, 국방부내 몇몇 군인들에 대한 책임문제까지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장거리 지하터널 문제는, 그 발단 및 전개과정에 있어 ‘수지김 사건’과 매우 흡사하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안기부도 지난 1987년 ‘황급히’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바람에 엉뚱한 사람(수지김)을 ‘북한 여간첩’이라고 발표하는 실수를 범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직후 안기부내 극소수의 관계자들은 수사과정에서 그녀가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수지김은 간첩’이라고 공식발표한 뒤의 일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안기부는 ‘수지김=간첩’이라는 공식입장을 무려 15년 동안이나 고수하게 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안기부내 극소수의 관계자들이 “사실이 밝혀질 경우 국제적으로나 북한에게 망신당할 우려가 있다”는 핑계를 내세우면서 사건의 진실을 대외적으로는 물론 심지어 대내적으로도 숨겨왔던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마치 오늘날 국방부내 극소수의 관계자들이 관련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여타 국방부 직원은 물론 심지어 전후방의 야전군들에게조차 장거리 지하터널의 실체를 숨기고 있듯이 말이다. 그러던 중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야 수지김 사건의 진실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는데, ‘수지김 사건’에서 보듯이, 장거리 지하터널 문제 역시 국방부에게만 맡겨 놓아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우리 국민들이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한민국 국방부를 대신해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인민무력부가 장거리 지하터널의 실체를 우리 국민들에게 입증해줄 날이 머지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은 다음의 사례에서 보듯이 당장이라도 남침할 수 있는 준비를 모두 완료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 최근 들어 북한 전투기들이 집중적인 실전훈련 실시하고 있는 가운데(하루 평균 100회 출격) 노동신문은 인민군 총참모부가 중대보도를 통해 “고도의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보도(4.4)한 데 이어 조선중앙방송 역시 이를 5차례나 재방송함으로써 북한 주민들 사이에 “전쟁전야 같다”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의 전쟁 분위기 조성

●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은 4월 8일 평양 개최 ‘로켓발사 성공 환영 군중대회’에 참석,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를 최악의 정세가 지속되고 있다. 만약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감히 전쟁의 불을 지른다면 단호하고도 무자비한 대응타격을 가할 것”임을 직접 경고(북한은 지난 3월 30일 남한정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할 경우 “조선반도에 전쟁의 불 구름을 몰아오는 도화선이자 선전포고”라며 “즉시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한바 있으나, 우리 정부는 조만간 PSI 참여를 발표할 예정)

● 4월 9일 김정일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전시상태와 동원령을 선포할 헌법적 권한을 가지는 국방위원장에 재취임 함으로써, 자신의 남침결심이 전체 북한주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무모한’ 남침 결행에 따른 군부의 반발 가능성 등 사전 봉쇄)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필자는, 더 늦기 전에 국방부로 하여금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우리 국민들이 뜻을 한데 모아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구체 행동계획에 대해서는 저의 블로그에 들어오셔서 토론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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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땅굴 남침 임박? 김교수 대국민 안보보고서(전문)
옐로우카드 2009/01/18 09:32

현직 국가정보원 직원이 북한의 기습 남침 가능성을 주장하는 내용의 개인문서를 소속 기관의 승인도 없이 언론사에 보내고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발표하는 등 돌출 행동을 해 파장이 일고 있다.

경제위기를 예언한 미네르바가 한동안 우리사회의 화두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북한남침 예언이라는, 그것도 현 국가정보원 소속 직원이 일부 신문기자에 공공연하게 발표한 행동은 적지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그는 미국이 정권교체를 앞두고 있는 시점도 김정일로서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라며 임기 말의 부시 대통령이나 아직 취임하지 않은 버락 오바마 당선자 모두 또 다른 전쟁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현재 북한의 남침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 같은 내용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중간보고 과정에서 국방부가 자신의 보고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조기경보 발령' 차원에서 이 글을 직접 공개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교수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른 의견으로 국정원의 공식 보고서나 논문이 아니며 국정원의 입장이나 견해도 아니라고 밝혔지만 이번 사건은 중앙정보부 창설 이래 초유의 일이고 더군다나 북한이 연초에 갑작스럽게 서해북방한계선을 들먹이며 군사적 전면대결을 불사하겠다며 위협을 가하는 시점에서 터져 나온 일이라서 그가 왜 이런 돌출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일이 그냥 단순하게 일개 국정원 직원의 과잉걱정의 발로일까? 아니면 이명박정부가 일종의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고도의 작전일까? 아니면 정말 북한은 미국정권 교체와 남조선의 해이한 안보의식을 믿고 일대 모험을 감행할까?

서해상북방한계선 문제를 가지고 한국을 위협하는 북한의 태도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대미선전용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북한의 명백한 단정적 위협을 왜 그리도 복합적이고 심오한 고수의 묘수처럼 해석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면 북한의 술수는 참으로 단순하고 직선적인 협박이었는데 전문가들 스스로가 김정일의 의도를 과분하게 포장해주는 바람에 국민들까지 얼이 빠진채 안보불감증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이미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안보라는 단어를 개떡처럼 취급하고 나라가 망해도 철천지 원수같은 이명박 보수정권만 무너뜨리면 된다는 일념으로 내부싸움에 몰두해 있는 현실에서 북한의 전면 남침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죽어라고 덤비는 사람과 조그만 상처도 애써 피하려는 사람의 싸움은 결과가 뻔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미 자기 이익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누구 하나 자신이 피 흘리는 것을 감수하려는 사람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전쟁을 치룰 것인가? 그러니 조그만 협박에도 굴복하곤 하지 않았는가? 여기에 조그만 것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보신주의까지 겹치면 나라의 안보는 점점 힘들어진다. 게다가 중국과 미국과 일본과 러시아가 얽히고 섥힌 복잡한 국제정세에 기대어 전쟁이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먼 나라의 일로만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에서는 패망의 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리가 전쟁의 위협에서 버티고 살아남으려면 공안정국을 조성한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라도 우리 사회 전반의 안보체제와 의식을 점검하고 정비해야 한다. 전쟁은 단 한번의 방심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위험한 게임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똑똑히 명심해야 한다.

보고서 전문 보기 (나머지는 용량초과로 잘림) 

대국민 안보보고서

저는 현직 국정원 직원이자 교수로서 해외정보 분야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전에는 오랜 동안 해외정보요원으로 활동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북한 보위부 요원을 포함하여 상당수의 북한 사람들과 ‘친분’을 나눈 경험이 있습니다. 덕분에 ‘책으로 공부한 것’과는 다른 북한의 현실을 직시할 기회를 가졌고, 그 결과 이미 10여년전부터 북한체제가 심각한 붕괴위기에 직면해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제가 만났던 대부분의 북한사람들은 북한의 붕괴를 시간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을 정도로 심각한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그 당시부터 북한 체제가 붕괴될 가능성과 그에 따른 한반도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특히 그때는 우리나라도 IMF 위기를 겪던 터라 자칫하면 안보의 IMF도 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우리 정부가 ‘햇볕정책의 성과로 조만간 북한이 개혁개방을 할 것’이라고 주장할 때에도, 저는 북한의 군사동향과 특히 김정일 개인의 움직임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끊임없이 추적해 왔습니다. 그런데 작금의 안보상황은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기에는 너무도 위급하게 전개되고 있기에 감히 우리 국민들에게 국가안보보고서를 직접 올리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바람은 이 보고서를 통해 우리 국민들께서 오늘의 안보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함과 동시에 힘을 모아 대책강구에 동참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의 국가안보가 튼튼해지는 것은 물론 평화통일도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보고서는 제가 지난 10여년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관계로 다소 분량이 많기는 하지만, 우리의 안보현실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인내심을 갖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가능한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분들이 읽으실 수 있도록 이 보고서를 적극적으로 전파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본문 내용 중 일부를 임의로 왜곡 및 수정해서 전파하거나 또는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2009년 1월 김영환

《필자의 주요 학?경력》

● 고대 졸
● 런던대 연수(러시아어 및 소비에트 학)
●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어학연수
● 駐모스크바 대사관근무
● 駐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관근무
● 현 國家情報大學院 교수 겸 첩보학팀장

목 차

Ⅰ. 북핵,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

Ⅱ.「평화적 해결론」의 한계

1.「북-미 수교」對「조-미수교」
2.「체제유지」對 「정권유지」
3. 6.15 남북정상회담의 실상
4. 서해도발(제2연평해전)의 실체

Ⅲ.「남침 임박론」의 근거

1. 이라크 戰과 맞물린 핵도박
2. 또 다시 반복되는 「김정일의 오판」

Ⅳ. 북한의 남침능력

1. 남침의 필요조건-장거리 지하터널
2. 남침의 충분조건-무비유환(無備有患)

Ⅴ. 여전히 남는 의문점들

1. 전쟁 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
2. 남침 가능성에 대한 평가
3. 남침 가능성이 모호한 이유

Ⅵ. 국가위기관리의 장애물

1.「합리적 논리」의 함정(Mirror-Imaging)
2. 정보관(Intelligence Officer)의 불리함
3. 정치적 이해관계
4. 모호성 관리

Ⅶ. 새로운 햇볕정책

Ⅰ. 북핵, 새로운 접근법 필요

최근 북경 개최 6자회담이 끝내 합의도출에 실패(2008.12.11)했다. 참가국 대표들이 회의 일정을 하루 연장하면서까지 절충을 시도했으나 북한이 핵 검증체계 구축에 강력히 반발함에 따라 회담이 결렬되었고 그 결과 지난 5년 동안 지속되어온 6자회담은 중대한 기로를 맞게 되었다. 이와 관련 현 정부의 대북강경책에 일단의 책임이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이는 북핵 문제의 본질을 간과한 주장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은 6자회담 방식으로는 우리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하든지에 상관없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최선의 경우를 상정해서 ‘북-미 수교’ 등을 포함해서 북한의 모든 요구 사항이 100% 충족된다고 해도, 북핵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북한이 과연 핵물질 및 핵무기 폐기 등과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인지가 지극히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둘째, 설령 북한이 그러한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이를 미국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줄 것인지 역시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북한이 일부 핵무기 등을 은닉했을 것으로 의심하면서 검증작업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 북한이 선선히 수용할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만에 하나 북한이 진정으로 핵을 포기할 의지가 있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김정일 입장에서 볼 때, 설령 핵을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한 이후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 및 러시아 등이 미국의 약속 이행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주장이 가능하겠으나, 이와 관련해서는 북한의 핵개발 배경에는 혈맹국인 중국 및 러시아에 대한 불신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즉, 혈맹국도 믿지 못해서 개발한 핵을 ‘철천지원수’인 미국을 믿고 포기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이 때문에 북핵 문제에 대해 우리의 시각이 아닌, 김정일의 시각에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에 집착한다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요원할 뿐만 아니라, 자칫 돌이킬 수 없는 민족적 재앙마저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Ⅱ.「평화적 해결론」의 한계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가능하다는 소위 ‘평화적 해결론’은 주로 다음과 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첫째, ‘북한은 미국과의 수교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다. 즉, 미국이 ‘북-미 수교’와 함께 체제보장을 해준다면 북한도 기꺼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둘째, ‘북한의 개혁개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개혁개방 이외에 달리 대안이 없는 만큼, 비록 다소간의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결국은 김정일도 개혁개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논리들이 실상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假說)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그 동안 우리 정부 등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바탕으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추진해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선 ‘북한이 북-미 수교를 간절히 원한다’는 가설의 정확성 여부부터 검토해보기로 하자.

1.「북-미 수교」對「조-미 수교」

이와 관련 우선 북한은 단 한번도 ‘북-미 수교’를 요구한 적이 없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즉,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북-미 수교’가 아닌 ‘조-미 수교’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동안 우리 정부와 언론 등은 마치 북한이 ‘북-미 수교’를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임의로 왜곡해 왔다는 것이다. 혹자는 ‘북-미 수교’와 ‘조-미 수교’가 같은 말 아니냐며 반박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시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이 주장하는 ‘조-미 수교’란 남?북조선이 적화통일 되거나 또는 사실상의 적화통일이 보장된 상태에서 미국과 수교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 문제에 대한 노동신문의 논설내용이다.

『지금은 21세기이다. 20세기 미제의 대조선침략정책의 산물인 미군의 남조선 강점(주한미군)은 새 세기에 들어와서 마땅히 끝장났어야 할 것이었다... 남조선 강점 미군 철수는 미국이 우리와의 불가침조약 체결과 대조선 적대시 압살 정책 철회 의사가 없는가를 판단 검증하는 시금석으로 된다... 미국이 진실로... 조-미 관계를 개선할 입장이라면 하루 빨리 미군 철수 용단을 내려야 한다...』

이상과 같은 노동신문의 논조를 보면, 북한만이 ‘조선반도 내 유일합법정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조선반도 내 유일합법 정부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사전 동의 없이, 미군이 조선반도 남쪽에 ‘무단으로’ 주둔하고 있는 것 자체가, 곧 미국의 조선에 대한 침략행위이자 대조선 적대정책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핵포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조-미 수교’ 또는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 등은 결국 ‘주한미군철수’로 귀결된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남북 분단 상황에서 미국과의 수교, 즉 ‘북-미 수교’에 대해 김정일은 어떻게 생각할까. 다음은 이와 관련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증언 내용이다.

“김정일은 미국 대사관이 평양에 들어오는 것은 절대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북을 떠나 올 때까지 김정일은 미국의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절대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했어요... 그러니까 지금에 이르도록 미국대사관이 오는 것에 반대해서, 건물이 어떻다, 부지가 어떻다 하며 질질 끌고 있지 않습니까. 김정일은... 가당치도 않은 독재가 천하에 드러나서, 외부로 알려지는 것에 끊임없이 신경 쓰고 있습니다...”

황 전 비서에 따르면 김정일은 ‘북-미 수교’에 대해 ‘절대 반대’임을 알 수 있다. 물론 황 전 비서는 김정일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가진 인물이기에 그의 주장 모두를 절대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직접 경험했거나 목격한 것까지 부인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할 것이다. 게다가 전 미 국무부 북한 담당관이었던 케네스 박사도 같은 취지의 증언을 하고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참고로 지난 1994년의 제1차 핵위기 당시에 미국과 북한은 ‘제네바 핵합의’를 이루게 되면서 한때 양국간 연락사무소 개설을 포함한 수교문제를 협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북한은 ‘북-미 수교’에 대해 매우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케네스 박사의 회고록 내용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당시 미국 정부의 보상조치 목록은 북한의 1차적 목표가 미-북 관계정상화에 있다고 보는 한국 정부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강석주(북한측 수석대표)는 갈루치(미측 수석대표)의 북-미 외교관계 정상화 제안이 극히 훌륭한 것이라고 평했지만 북한으로서는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석주는 연락사무소와 관련한 갈루치의 반복적인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그 제안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 먼저 제시했다... 연락사무소와 관련한 협상에서 북한의 관심사는 입국과 국경 안에서 미국 외교관들의 통제 여부였다. 설사 그것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지연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다시 말해서 국무부 협상팀이 제안한 연락사무소 같은 유인책들은 실제로 평양의 결정과정과 아무 상관이 없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케네스 박사 역시 북한이 ‘북-미 수교’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증언하고 있다면, ‘김정일은 북-미 수교에 절대 반대’라는 황 전 비서의 주장은 사실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북한이 주장하는 ‘조-미 수교’란, ‘북-미 수교’와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사실상 ‘주한미군 철수’와 동의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주한미군 철수’ 대신 ‘조-미 수교’ 또는 ‘불가침 조약’ 등과 같은 모호한 주장을 하는 것일까. 이는 북한이 우리 정부 당국자 등을 속일 목적으로 교묘한 이중화법(double speaking)을 구사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이중화법이란 전쟁, 독재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개념에 대해 평화, 민주 등과 같이 긍정적인 용어로 바꿔 표현함으로써 자신들의 의도를 숨기려는, 공산주의자들의 상투적 기만수법 중 하나이다. 이의 대표적 예로는 과거 구소련이 헌법상에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규정해 놓고 이를 근거로 종교를 탄압했던 것을 들 수 있다. 소련이 보장했던 ‘양심의 자유’란 양심을 지킬 수 있는 자유, 즉 ‘종교(마약)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했기에 소련 당국은 전도(傳道)행위에 대해 타인의 ‘믿지 않을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처벌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민족 공조’ 역시 이중화법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북한은 우리 민족에 대해 ‘김일성 민족’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주장하는 민족공조란, 단순한 혈통공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상공조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남북한의 ‘김일성 민족끼리’ 단결하여 외세와 반통일 세력을 몰아냄으로써 적화통일을 달성하자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남한내 ‘김일성 민족’은 그 규모가 얼마나 될까. 이와 관련 북한 당국이 지난 2004년 4월에 작성, 배포한 ‘전시(戰時)사업세칙’(북한판 충무계획)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북한의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남한내 김일성 민족은 전쟁발발시 북한군의 병력 손실에 대한 인원 보충을 지원토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북한 당국이 보기에 남한내 ‘김일성 민족’은 남침에 따른 북한군의 병력보충을 지원(인원추천)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세력 규모가 확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북조선과 미국간 수교가 아닌 ‘조-미 수교’라는 점에서 ‘북-미 수교 대(對) 핵포기’ 실현을 추진해온 6자회담은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이 원치도 않는 조건으로 핵포기를 유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최소한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조-미 수교’(적화통일)를 묵인할 생각이 아니라면,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2. 「체제유지」對「정권유지」

평화적 해결론의 또 다른 결함은 ‘북한의 개혁개방이 가능하다’는 비현실적인 가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가설은 김정일에게 있어 최우선 관심사항은 체제유지가 아닌, 정권유지일 수밖에 없음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정권유지가 보장되지 않는 체제보장은 정치인 김정일에게 있어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북한의 개혁개방이 가능한지 여부는, 곧 개혁개방을 했을 때 북한의 체제유지는 물론 정권유지도 가능한지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지난 1998년 1월 공개한 김일성 면담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관련 면담록에 등장하는 ‘호네커’는 구동독의 서기장으로서, 통일직후 독일정부의 수배(베를린 장벽 탈주자에 대한 사살 명령을 내린 혐의)를 피해 소련으로 도피했다가 소련 붕괴로 인해 독일로 강제 이송, 재판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한 호네커가 김일성 면담록에 등장하게 된 배경은, 그가 독일로 강제 이송되기 직전에 북한에 망명 신청을 했으며, 이에 북한은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 비행기를 모스크바로 보냈지만 러시아 정부의 거부로 실패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생전의 김일성이 외국인을 접견하면서 호네커의 운명을 걱정했던 말이라고 한다.

“모스크바에서 병(간암 말기) 치료를 받고 있는 호네커를 가지고 러시아 사람들(옐친 행정부)이 돈벌이를 하려고 하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몇 푼의 달러에 현혹되어 동지를 팔아먹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호네커는 그가 우리나라에 와서 병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제기해 왔습니다... 김정일 동지가 새벽 4시경에 나에게 급히 알릴 문제가 있어서 전화를 한다고 하면서 호네커가 우리나라에 와서 병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편지로 전해 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를 데려오기 위해 모스크바에 우리 비행기까지 보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사람들이 호네커를 우리에게 넘겨주지 않기 때문에 그를 데려 올 방법이 없었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호네커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나와 동갑이며 나와 그와의 관계는 좋습니다. 호네커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는지 걱정됩니다. 나라가 망하니 사람들도 기구한 운명을 면할 수 없습니다...”

상기와 같은 김일성 면담록이 뒤늦게 김정일 시대에 공개됐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이는 김정일도 개혁개방을 할 경우 ‘지도자가 기구한 운명을 맞게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동서독 통일직후 구동독 공산당 간부 등이 처벌받은 사례 등을 수집하여 당 간부 및 주민 사상 교육용으로 활용해 온 사실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참고로 독일은 통일 직후「동독 불법행위조사위원회」를 구성, 총 6만5000건을 조사한 결과 650건을 기소하였으며, 그 중 325명을 처벌하였는데, 처벌자 중에는 장기 징역형 등을 받은 구동독 권력층과 관료 40명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생전의 김일성이 개혁개방을 절대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김정일 역시 개혁개방의 폐해를 당간부 등에게 교육시켜왔다면, 김정일로서는 개혁개방을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할 것이다. 그럴 경우 이는 김일성과 그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가 됨으로써 정권기반이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사회주의 체제유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정권붕괴 우려 때문에 개혁개방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김정일이 북-미 수교도 원치 않으며 또한 개혁개방도 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 우리는 6.15 정상회담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애당초 개혁개방은 물론 핵도 포기할 생각이 없는 김정일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응했다면, 그 목적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것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3. 6.15 남북정상회담의 실상

지난 6.15 남북정상회담의 최대 성과와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에 대해 김정일이 동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북한은 오늘날까지도 주한미군 철수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한미군 철수(불가침조약)를 핵포기와도 연결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무엇을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일까. 다음은 이와 관련한 연합뉴스 내용이다.

『(도쿄=연합통신)=통일된 후에도 평화유지를 위해 미군은 남는 것이 좋다=일본 아사히 신문은 9일 ‘코리아, 공존시대’라는 주제로 1면 머리의 특집을 통해 지난 6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이같이 명언(名言)했다고 소개했다. 특집에 의하면 6월14일 오후 백화원 영빈관의 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주한 미군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지역의 안정과 완충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미군이 없다면 지역의 세력균형은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말문을 열었다. 북한측에서는 김용순 비서가 먼저 “미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이때 김 위원장이 끼어들어 김용순 비서를 향해 “주둔하면 어떠한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하고 미군은 반드시 철수해야 된다는 김용순 비서의 거듭된 주장에 대해 “용순 비서, 그만 두세요”라고 힐책했다.

김 위원장은 다시 김대통령을 향해 “내가 무엇을 하려 해도 밑에 있는 사람들이 이같이 반대한다. 군(軍)도 미군에 대해서는 용순 비서와 같이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설명에는 동감하는 면도 있다. 지금 철수는 필요하지 않다. 통일된 후에도 평화유지를 위해 미군은 남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김 위원장은, 북측이 보도를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한사코 주장하고 있다는 김대통령의 지적에 대해 “내부용이다. 우리의 군도 긴장으로 유지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남북정상회담 석상에서 김정일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한 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김정일의 주한미군 주둔용인’을 6.15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로 꼽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장은 분명한 근거가 있다고 할 것이며, 따라서 오늘날 북


오정식 14-07-28 08:12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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