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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6-27 20:46

김정일 마지막 카드는 '남침 땅굴'<주간신문 뉴스포스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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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추적! 核보다 더 무서운 북한 땅굴 현주소 
<br/>김정일 마지막 카드는 ‘남침 땅굴’
<br/>탈북 고위 인사 “휴전선 이남 600Km까지 침투”
<br/>전문가들 “전쟁시 北 땅굴로 남한 전역 초토화”
<br/>  <img src=http://newspost.kr/article/editor/uploaded/124605874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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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지난주 연합뉴스는 북한의 땅굴기술이 미얀마에 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도를 했다. 연합뉴스는 스웨덴의 버틸 린트너 기자가 그동안 미얀마를 전문적으로 취재해 왔으며 북한 기술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미얀마 정부의 영빈관에서 나오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고 전했다. 린트너는 북한 기술자들이 미얀마 군부를 위해 현지 지하시설 건설에 도움을 줬다고 밝히며 이 사진이 2003년에서 2006년 사이에 찍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레바논에서 발견된 헤즈볼라의 지하시설이 북한의 땅굴과 매우 흡사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에 <뉴스포스트>는 이전에 발견된 북한의 땅굴과 연관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br/>본문
<br/>올해 초 국정원 국가정보대학원의 김영환 교수가 언론을 통해 북한의 남침 땅굴을 경고한 보고서를 발표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대국민 안보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단기속전속결원칙’을 바탕으로 개전과 동시에 전후방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고 신속히 부산까지 남진시킴으로써 한반도 전역을 장악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
<br/>이어 김 교수는 남침용 땅굴이 우리의 후방 깊숙한 지역에까지 들어와 있을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귀순자 및 육군의 관측병, 관련 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땅굴을 이용한 북한의 남침이 임박했음을 경고했다.
<br/>1980년 6월에 귀순한 이 모씨는 개성시 판문군 일대에서 당 세포비서, 직맹위원장 등의 직책을 맡아 수행하면서 지도사업차 화곡광산 갱에까지 들어가 본 증언자이다. 그가 광산 당위원장 사무실에서 본 기본 진도 현황은 한강중심, 즉 군사분계선까지 남하한 것이었다. 기본갱이 화곡광산에서 남쪽으로 직선으로 뻗어 있고 높이와 너비가 2.5t 화물트럭 2대가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br/>또 인민군 제3사단 민경대 준위로 근무하다가 지난 79년에 귀순한 안 모씨는 다음과 같은 증언을 했다. “땅굴 공사부대에 근무하는 간부로부터 ‘땅굴 속으로 작업반을 들여보낼 때는 한국군 복장을 하도록 하고 말씨도 국군 말투를 교육시킨다’는 말을 직접 들었습니다. 아마도 작업 중 남한측에 붙들리는 일이 생길 때에 대비한 위장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br/>장거리 지하터널 후방 침투 가능성
<br/><img src=http://newspost.kr/article/editor/uploaded/1246058779.jpg>
<br/>북한에 의한 남침용 땅굴은 1974년 11월 15일 고랑포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총 4차례에 걸쳐 발견되었다. 제2땅굴은 1975년 3월 19일 강원도 철원에서 제3땅굴은 1978년 10월 17일 경기도 문산에서 발견되었다. 1990년 3월 3일 강원도 양구에서 제4땅굴이 발견된 이후 더 이상의 땅굴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br/>김 교수는 북한이 우리 군에 의해 땅굴이 발각되자 기존의 단거리 땅굴을 전략차원으로 확대발전시켜 장거리 지하터널을 구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이 최소한 휴전선으로부터 250km 이상 남진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br/>이 터널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이유로 장거리 지하터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위치에 있다는 점을 들었다. 평양 지하철이 지하 100m 지점에 건설되었다는 사실과 기존의 단거리 땅굴(제2,4땅굴)조차 지하 145~160m 지점에서 발견된 것이 그것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우리의 지하철이 지하 20~30m 지점에 건설되는 것을 볼 때 장거리 지하터널이 그동안 발견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지적한다.
<br/>화성 남침땅굴현장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매송영락교회 김진철 목사는 “김영환 교수의 보고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귀순자 및 발견 현장 주민들의 다양한 증언을 전했다.
<br/>북한은 자동굴착기 TMB을 도입해서 남침땅굴을 파고 있으며 이를 이용해 1년에 약 30km를 굴착한다는 것이다. 이때 발생하는 파편들은 공사장으로 이동시키는데 가장 많이 사용한 곳이 서해갑문공사와 평양-원산 고속도로 현장이라고 김 목사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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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헤즈볼라 지하시설, 北 땅굴과 흡사
<br/><img src=http://blog.chosun.com/web_file/blog/27/70527/1/PICT5510.JPG>
<br/>▲ '남침 땅굴을 찾는사람들' 대표, 김진철 목사 
<br/>한편 지난주 북한이 미얀마에 땅굴기술을 수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사실을 보도한 린트너 기자는 광범위한 지하 네트워크 시설이 미얀마 양곤에서 북쪽으로 460km 떨어진 네피도에 건설됐고 이어 추가 터널과 지하 회의장이 미얀마 동부 샨주(州)의 주도인 타웅지에도 조성됐다고 전했다. 또한 린트너는 지난 2006년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가 버리고 도주한 지하시설이 한반도의 비무장지대(DMZ) 밑에 북한이 파놓았던 땅굴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br/>이에 통일부 정세분석국 관계자는 “확인된 바 없다”며 “관련 정보가 있다 하더라도 공개할 수 없다”고 전했다.
<br/>한편 땅굴 전문가로 평가받는 김진철 목사는 “북한과 미얀마는 우방국가”라며 “기술수출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헤즈볼라의 지하시설에 관해서도 “미사일뿐만 아니라 땅굴기술에 관해서도 북한과 중동국가들 간의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베트남 전쟁 때 쿠찌 땅굴도 북한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덧붙였다.
<br/>1975년 강원도 철원 제2땅굴 발견 현장에 참여했던 마산교구회 이종창 신부 역시 양국의 관계를 거론하며 “북한이 미얀마의 지하시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전했다. 이어 “북한의 땅굴기술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수준이 매우 높다”며 “북한은 그 기술을 수출하고도 남을 것”고 지적했다. 이종창 신부는 지하수맥을 찾아내는 다우징탐사 기술자로 알려저 있다. 군부대의 지하수를 찾아주고 다우징탐사에 관한 책자를 저술함으로서 육군에서 초청을 받아 제2땅굴 탐사에 직접 참여했다. 이후 민간인 탐사자들과 함께 김포, 연천, 의정부 일대에서 땅굴탐사를 펼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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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北 땅굴 전문가 김진철 목사 인터뷰
<br/>“남침용 땅굴에 탱크 투입”
<br/>- 남침 땅굴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br/>2002년 경기도 화성에서 고 정지용씨가 특이한 땅굴의 징후를 발견하게 됐고 그것이 정말 심각한 문제이며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듬해부터 화성 땅굴 현장 본부장을 역임하고 있다.
<br/>현재 목사의 신분이기 때문에 땅굴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은 잘 모르는 것이 많다. 하지만 국가 안보를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 현재 땅굴 현장을 보존하고 귀순자들의 소견이나 증언을 바탕으로 해서 활동을 하고 있다.
<br/>- 현재까지 드러난 북한의 땅굴 기술은?
<br/>북한은 54년부터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70년대 후반까지 북한은 착암기를 이용한 땅굴작업을 펼쳤다. 이후 80년대부터는 유럽에서 수입한 TBM(Tunnel Boring Machine)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다. 북한은 이들 국가들에 대해 채무국의 위치에 있었으며 그로 인해 기계들을 수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
<br/>TBM을 이용하면 1년에 30km 정도의 굴착이 가능하다고 한다. 귀순자들의 증언에 따라 80년대 초에 작업을 시작했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까지 약 600km 이상의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br/>또한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땅굴 작업에 있어서의 물과 공기에 대한 문제들도 거의 해결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땅굴은 굴착에 관계하는 인부들이나 군병력의  숙식이 가능한 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황장엽씨로부터 직접 들은 바에 의하면 북한의 땅굴은 탱크도 지나다닐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br/>현재 남한의 중요시설에 땅굴이 들어와 있고 유사시에 필요한 병력이 상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br/>- 공식적으로 밝혀진 땅굴 외 다른 징후가 있는가.
<br/>국방부에서 발간하는 국방백서에도 북한의 남침땅굴이 20개가 있다고 기록해놓고 있다. 하지만 90년 3월 양구에서 발견된 제4땅굴 이외의 땅굴은 거의 공개되지 않고 있다.
<br/>한 민간단체가 김포에서 1989년에 땅굴을 발견했으며 2000년 연천에서 발견된 땅굴은 군지휘관들도 인공적인 땅굴이라고 추정했다. 여러 증거자료를 통해서도 북한의 땅굴이라고 보이지만 국방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br/>이후 2002년 12월 화성에서 고 정지용씨가 발견한 땅굴은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외신에서도 보도된 바 있다.
<br/>- 북한이 미얀마에 땅굴기술을 수출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어떻게 보는가.
<br/>북한과 미얀마의 국가관계를 고려해 볼 때 충분히 근거가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보도에서 거론된 헤즈볼라의 땅굴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미사일 수출 등의 대외적인 활동을 미루어볼 때 땅굴기술도 수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베트남 전쟁 당시의 쿠찌 땅굴도 북한으로부터 지원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br/>- 땅굴 발굴 작업에 있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br/>과거 공식적으로 밝혀진 땅굴 작업부터 거의 민간에 의해 이루어진 측면이 있으며 현재까지도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 민간 수준의 작업은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육군에 탐지과가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땅굴에 대한 육군의 입장은 이전에 비해 변화된 것이 없다.
<br/>북한과 관련된 여러 단체들이 있지만 공개적으로 땅굴과 관련된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탈북자들 중에서도 땅굴 작업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많을 것이지만 그들 역시 신변에 대한 위협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들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된다면 땅굴에 관한 제보나 증언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br/>- 앞으로의 계획은?
<br/>그동안 국민들의 북한 땅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위험성이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알리는 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현재 ‘남침 땅굴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블로그와 칼럼을 통해서도 활동하고 있다.
<br/>매주 금요일 서울에서 갖는 강연도 지속하게 유지할 것이며 북한 관련 행사에 수시로 참여해 의견을 주장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북한단체들과 공조해 활동을 할 계획이다. <훈>
<br/>2009년06월27일 08:28:27초 
<br/>정해훈의 전체기사  (정해훈 기자 [email protected])</span>

[이 게시물은 남굴사님에 의해 2012-02-25 16:57:15 처음 방문하신 분을 위한 글(으)로 부터 복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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