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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6-18 11:24

노무현대통령에게 올린 화성남침땅굴 청와대 탄원서(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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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통령 각하께 올리는 현장본부장의 눈물의 탄원서
글쓴이  김 진철 등록일  2003-05-08 [00:01] 조회수  270

대통령각하!
화성땅굴 현장을 지키는 매송영락교회 담임목사 김 진철입니다.  지역주민이 본 화성땅굴의 진실,  아니 이 시대 공인의 한사람으로서 본 화성땅굴의 진실을 2003년 3월 중순에 우편으로 청와대 민원실로 보내었습니다.  그 답장이 없길래 공개적으로 남굴사 홈페이지로 노무현 대통령 각하께 공개적으로 눈물의 탄원서를 올립니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각하의 넓은 사랑으로 이해해주실 줄 믿습니다.  각하께서 출범시킨 이 정부의 철학을 알고 있습니다.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국민과 약속했습니다, 또한 국민 참여 정부를 출범시켰습니다."
  각하! 각하의 젊은 날 진실을 이야기하는, 작은 무리들을 찾아 가셔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진실을 세상 밖으로 알리는 대변인을 훌륭하게 하셨지 않습니까?  아마도 그 열매가 오늘날 "노무현 대통령이란 큰 열매로 이루어질 수 있던 계기가 되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 당시 각하께서 진실을 이야기할 때 그 진실이 세상에서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핍박과 탄압을 받을 때 즐겨 부르셨던 노래가 "이침 이슬"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각하께서 친히 광고 모델로 나오셔서 보여준 그 모습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만큼 진실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각하!  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그러나, 지금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안보라는 큰 구멍이 난 사실을 화성 땅에서 나는 발견했습니다.  그 발견이 땅굴입니다.  지금 저는 화성땅굴이 발견된 지점 700메다 앞에서 매송영락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입니다.  그 화성땅굴 현장에서 14년 동안 북한의 남침용 땅굴을 발견하고 그 진실을 이야기했던 정 지용 선생이 죽어 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정지용 선생님께서 못다 이룬 일을 현장에서 맡아서 일하셨던 최 민용 본부장마저 쓰러져서 오랜 시간동안 수원중앙병원에서 입원하셨습니다.  지금은 요양 중에 있습니다.  저 김 진철 목사는 최 민용 본부장 이후 현장본부장 일을 2003년 3월 1일부터 맡아서 지금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동안 현장에서 북한의 남침용 땅굴을 입증하는 산 증황물들을 건져 올렸습니다.  그것들을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2003년 3월 6일 쇠로 된 파이프 2개와 콘크리트가 붙어있는 우비 조각을 건져 올렸습니다.
  2003년 3월 10일날 은박지로 된 무우씨 봉지를 건져 올렸습니다
  2003년 3월 11일날 구리합금으로 된, 우리 나라의 호미 비슷한 것을 건져 올렸습니다
  2003년 5월 2일날 기계볼트의 "와샤"를 건져 올렸습니다.
  2003년 5월 5일날 일명 역대책시 사용되는 돌을 발견했습니다.
  각하! 지금 현장에 오시면 역대책한 거대한 모습을 한 눈에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작업을 위해서 두 달 동안 늘 수작업으로 북한의 남침용 땅굴의 흔적을 찾았고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노무현대통령 각하!  왜! 목사가 매일매일 땅굴 현장으로 출퇴근을 해야 합니까?
바로 진실이 묻혀 있기 때문입니다.  각하!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국가 안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안보가 건강해야 국민의 주권도 그 안에서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가안보가 건강치 못한다면 한 나라의 주권자의 힘도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민족은 50년이 넘게 두 체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절대로 남북의 사상, 이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각하께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왜! 국방백서에는 20개의 땅굴이 있다고 적시하고 있습니까.  그럼, 북한이 왜! 땅굴을 파는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휴전선과 마찬가지로 이 곳은 수원부근이기 때문입니다. [ 화성시 매송면 천천리 화성땅굴은 불과 수원과 2km 거리의 경계지역입니다. ]  이것이 바로 화성땅굴의 현실입니다.  분명히 이것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 그것도 장거리 땅굴의 한 증거입니다.  지금까지 현장을 지켰습니다.  그런데도 정부 관계자나, 국방부관계자들이 공적인 직임을 가지고 현장에 단 한차례도 공식적으로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과연 이 모습이 국민 참여 정부의 철학입니까?  오히려 땅굴현장을 지키는 우리들을 정신병자 사기꾼 또는, 사이비 이단집단으로 호도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참여정부의 수장이신 각하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운한 마음이 있습니다.  국가의 안보에 비록 0,1%의 문제가 발생할지라도 그 문제를 중히 여기고 현장을 그 자리에서 확인하는 참여정부가 될 때에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각하께서 지금까지 걸어오신 정치사역이 바로 진실을 이야기했지 않습니까? 
  화성땅굴은 분명히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묻혀있고 전 국민이 알아야 할 이 시대 진실이 묻힌 것입니다.  소수의 진실을 외면하지 마시고 그 진실을 밝혀주시는 각하의 정치 사역이 될 수 있도록 늘 기도하겠습니다. 
  각하!  북한의 핵보다도 더 무서운 문제가 바로 땅굴입니다.  김 일성의 교시로 이미 알려진 말입니다.  여기 김 진철 목사가 땅굴의 확신을 가지고 일해야 했던 그 사연은 3월 중순에 각하께 올린 탄원서에 이미 상세히 올려드렸습니다.  꼭, 진실을 이야기하는 김 진철 목사의 바램을 외면하지 않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각하의 건강과 각하의 정치사역이 조국을 위해서 존경받은 대통령이 되시길 늘 기도 하겠습니다.
                                        남굴사 화성땅굴 현장본부장 김 진철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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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화성땅굴은 미국과 대한민국의 최대 안보 위기.
글쓴이  김 진철 등록일  2003-07-02 [11:50] 조회수  404

화성땅굴의 진실을 미국 부시 대통령께 전해 드렸습니다.  그 결과 2003년 6월 28일 미국에서 김 진철 목사에게 이메일이 한 통 왔습니다.  나는 이 문제를 놓고 작정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용기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정부 기관에서 핍박이 있을 지라도, 반드시 화성땅굴에 대한 진실을 인터넷이란 세계 공통언어를 통하여서 전 세계에 알리는 사역이 제게 주어져 있음을 다시 한 번 깊이 느낍니다.  지역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지역에서 목회하는 장로교회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화성땅굴 현장에서 현장본부장으로 일을 하면서 많은 증황물을 건져 올린 증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김 정일 공산정권이 파놓은 남침용 땅굴로 인한 엄청난 위기를 극복하는 일이라면 나의 생명까지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진실을 이야기하는 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목회자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먼저 나의 조국에 있는 지도자들에게 화성땅굴의 진실을 여러 차례 문서상으로 보내고 인터넷상으로도 알렸지만, 화성땅굴의 진실에 관심을 가져주는 지도자가 없다는 것에 대해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에게 호소한 내력들을 밝힙니다.
  1] 2002년 12월 26일 경기도 경찰청에 " 지역주민이 본 화성땅굴의 진실 ”이란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2] 2003년 3월말쯤 청와대 민원실에 노무현 대통령각하께 올리는 " 지역주민이 본 화성땅굴의 진실 "이란 내용을 담은 등기편지를 발송했습니다.
  3] 2003년 5월 8일 인터넷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각하께 " 화성땅굴에 대한 눈물의 탄원서  ”를 올렸습니다.
  4] 2003년 5월 20일 국회를 방문해 남굴사 [ 약칭 남침땅굴을 찾는 사람들 ] 홍보용 책자를 전 국회의원 사무실에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화성땅굴에 관심을 가지는 이 나라 지도자들이 없다는 것에 대해 많은 실망과 좌절을 했습니다.  화성땅굴의 진실을 이 시대가 풀지 못하면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환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소신에 따라, 작정된 금식기도를 마친 후 미국에서 보내온 이메일 한통에 확신을 가지고 믿음생활과 또한 기도생활을 소중히 여기는 미국의 지도자들에게 화성땅굴의 진실을 인터넷상으로 올려 드립니다.
  미국 현지에서 목회하시는 나의 선배 목사님, 또한 나의 후배 목사님.
  이 글을 접하시면 영어로 번역해서 미국의 각 기관에 올려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또한, 이 땅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분들 중에 영어에 자신이 있는 분이 있으면 역시 번역해서 미국의 각 기관에 올려 주시길 간절히 기도 부탁을 드립니다.
  신앙과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미국 부시 대통령각하!  화성땅굴은 대한민국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이 땅에 들어온 3만 8천명의 주한미군과 그의 가족들이 대한민국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화성땅굴은 곧 미국의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부시 대통령각하께서 " 화성땅굴의 진실 ”을 외면하신다면 제 2의 베트남 전쟁이란 악몽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실패한 원인이 무엇입니까?  바로 “ 땅굴 ” 아니겠습니까. 
  본인 김 진철 목사는 [ 대한예수교 장로회 매송영락교회 담임목사입니다. ]  저희 교회가 위치한 곳에서 화성땅굴 현장까지의 거리는 약 700M쯤 됩니다.
  1]  화성땅굴에 개입하게 된 동기
  A] 지하수 사건
    저희 매송영락교회에 출석하는 집사님 집에서 지하수 사건이 두 번 일어났습니다. [ 참고로 그 지역은 야산이어서 상수도가 연결이 되지 않아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
  1차 지하수 사건 [ 2002년 12월 18-19일 ]
  2차 지하수 사건 [ 2003년 1월 21-27일 ]
  그럼 왜! 지하수 사건이 나를 화성땅굴 현장에 개입하도록 했는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지하수 깊이가 대략 100-150M까지 내려갔다는 것이 [ 집사님이 주인 할아버지 집에 세들어 삼 ] 공사하신 주인 할아버지 말입니다.  2002년도 이 지역에 참으로 많은 비가 내렸고 가뭄 때문에 고난을 받지 않았습니다.  지하수의 특징은 겨울철에 물이 잘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차례나 진한 황토물이 많이 나오다가, 적게 나오다가 그리고 전혀 나오지 않았던 것이 바로 지하수 사건입니다.  본인 김 진철 목사가 연락을 받고 가서 직접 수도꼭지와 펌프의 모타까지 점검을 했습니다.  모타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후 나는 제일 먼저
현장에서 직업 중에 있었던 남굴사 [ 남침땅굴을 찾는 사람들 ] 관계자들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지금 화성땅굴 현장과 직선거리로 약 700M 떨어진 위치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보고를 했던 것입니다.  남굴사 관계자들이 여러 차례 공동 탐사를 한 결과 지하수를 판 우물 지역으로 땅굴이 지나갔다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때부터 땅굴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B] 2003년 4월 7일 새벽 5시경 새벽예배시간에 기계 소리가 저희 매송영락교회 땅 밑에서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그 소리가 난 후 남굴사의 다우징 기술자를 불러서 탐사를 해 보니 저희 교회 소강대상 밑으로 땅굴이 지나갔다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 주었습니다.
  2]  화성땅굴 현장 본부장으로서 일을 하면서 화성땅굴의 진실을 보았습니다.  나는 남굴사 회원이 아닌, 이 지역에 사는 평범한 주민겸 지역교회 담임목사였습니다.  이 지역에서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2년 11월 28일 현장에서 가진 남굴사 기자회견 때였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동참을 했습니다.  그 일 이후로 교회에서 남굴사 관계자들에게 주기적으로 선교를 해주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제 2차 지하수 물사건이 터지면서부터 교회 선교정책을 바꾸었습니다.  남굴사 관계자와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와 기사들을 위해서 아침과 점심 식사를 교회에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현장본부장이신 최 민용 집사님께서 현장에서 쓰러지시고 수원중앙병원에 입원을 하셨습니다.  현장에는 책임지고 일을 할 사람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본인 김 진철 목사가 2003년 3월 1일날 현장본부장이 되어서 2003년 6월 20일까지 현장을 지켜 왔습니다.  지금은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몸을 다쳐 집과 병원을 오가면서 잠시 쉬고 있습니다.
    A] 현장 본부장이 되어서 가장 먼저 한 일
  고 정지용 선생님께서 화성땅굴을 발견해놓은 곳을 2002년 11월 28일 - 2003년 2월 28일까지 현장을 보존해두었습니다.  그 자리는 화성땅굴의 결정적인 증황물인 쇠줄을 발견했고 또한 북한군의 땅굴 파는 기계소리, 전화 받는 소리, 잡담하는 소리를 녹취하고 큰 대공으로 땅굴을 관통시킨 자리였습니다.  이 부분은 미국의 월스트릿 저널지 존낙스 기자가 취재해서 미국 전역에 톱기사화했습니다.  그 장소를 포크레인과 프레카 [ 돌깨는 포크레인 ] 2대를 가지고 지하 20M 전,후 되는 지점까지 화강암반을 깨뜨려 내려갔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증황물들이 나왔습니다.  그 증황물들을 시간대별로 소개하겠습니다.
 1] 2003년 3월 6일 쇠파이프와 우비 두 조각이 나왔으며, 우비 한 조각에는 육안으로 볼 때 콘크리트 조각이 우비와 물려서 올라왔습니다.  2003년 3월 18일 윤 여길 박사님 [ 국방부장관 과학기술보좌관 출신 ]께서 이 조각을 한국화학연구원에 분석 의뢰한 결과, 100% 콘크리트조각이라고 판명되었습니다.  우비 조각은 러시아에서 원단장사를 하는 김 원곤씨가 와서 북한산이라고 증언해 주었습니다.  또한 1950년 6,25사변 때 육군 포로로 잡혀서 북한에서 갱도생활 [ 탄광인부 ] 하시던 분이 2003년 1월 말 경에 중국을 거쳐 탈북에 성공해  지금은 경기도 안산 동생 집에서 거주하고 계십니다.  그 분이 화성땅굴 현장에 오셔서 북한에서 갱도생활 할 때 입은 우비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 2003년 3월 10일 은박지로 된 무우 씨 봉지
 3] 2003년 3월 11일 구리 합금으로 된 호미 (  증언 - 베트남 현지 관광을 갔다오신 분들 중에 또한 선교사역으로 베트남에 갔다오신 목사님들이 베트남 구찌땅굴 유물전시실에 동일한 것이 전시되어 있다고 증언해 주었습니다. )
 4] 2003년 5월 5일 기계부속품 중 하나로 보이는 와샤
 5] 2003년 6월 2일 밧데리 [ 건전지 ] (  증언 - 2003년 6월 5일 탈북자 모임에 가서 북한산이라고 확인했음 )
 6] 2003년 6월 19일 방수용 밧데리 [ 건전지 ] (  증언 - 2003년 6월 20일 현장을 방문해주신 교계 지도자 중에 밧데리에 대해 기술을 가지고 있는 목사님이 한국에는 절대로 이러한 방수용 건전지 [ 밧데리 ]가 없다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증황물의 자료들을 남굴사 홈페이지 사진 자료실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3] 김 진철 목사가 본 화성땅굴의 지리학적인 중요성
  A] 한국에 주둔해 있는 미군기지 중 오산, 송탄 기지와 불과 20KM 내외 지역에 위치.
  B] 수원비행장과 약 4키로
  C] 발안 해병대사령부와 약12키로
  D] 현장 앞에는 51사단 공병대가 있습니다.
 4] 김 진철 목사가 본 화성땅굴의 위험성
  A] 수도권을 관통한 북한의, 명백한 남침용 장거리 땅굴입니다.
  B] 김 정일의 스승이었던 황 장엽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김 정일의 적화론 중에 "인질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인질론의 도구는 분명히 땅굴입니다.  땅굴을 통하여서 미군과 한국의 군시설과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미군을 일시적으로 포로를 잡는 도구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라고 생각합니다.
 5] 미국의 부시 대통령 각하께 드리는 김 진철 목사의 기도 부탁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북한의 남침용 땅굴로부터 지켜주십시오.  영원히, 대한민국을 신앙적, 경제적 그리고 안보적인 측면에서 우방의 국가로 지켜주십시오.  미국의 2천명이 넘는 선교사님들의 순교의 피가 대한민국 땅에 있습니다.  또한 1950년 6,25사변 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수만 명의 미군들이 피 흘려서 순교한 땅이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분신과 같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늘 기도할 때마다 미국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존경하는 부시 대통령각하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 각하!
  지금 김 진철 목사의 작은 소망은 2003년 12월 25일 성탄절 캐롤송을 꼭 듣고 싶습니다.
  이 소망이 북한의 남침용 땅굴로 꺾이지 않도록 기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목사의 한 사람으로 부시 대통령각하를 신앙적으로나, 지도자로서 존경하고 있습니다.
                              2003년 7월 2일 매송영락교회 담임목사 김 진철 올림

제목  노 무현 대통령께 올리는 세 번째 탄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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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 진철 등록일  2003-07-21 [01:32] 조회수  374

  2003년 7월 11일 7개 종단 대표들과 함께 한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한국 기독교계에서 화성땅굴의 심각성을 제기했을 때 노 무현 대통령각하께서는 비서진들에게 확인하라고 지시 하신 내용을 본인 김 진철 목사는 기독교연합신문 2003년 7월 20일자 신문에서 확인했습니다.  본인 김 진철 목사는 화성땅굴이 발견된 지점에서 겨우 700m 지점에 있는 매송영락교회 담임목사입니다.  지역주민이자, 지역 목회자입니다.  또한 2002년 11월 28일날 현장의 기자회견 때부터 동참해서 지금까지 화성땅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화성땅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매송영락교회에서 3천 6백만원과 2달이상 현장인부와 기사들에게 아침과 점심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2003년 3월 1일부터 - 6월까지 현장본부장으로 직접 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화성땅굴의 진실을 두 번이나 문서상으로 노 무현 대통령각하께 탄원서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탄원서 답변이 청와대에서 오지 않고 2003년 7월 3일 날짜로 국방부 정보본부장 명의로 왔습니다.  그 답변은 화성땅굴은 북한의 땅굴이 아니다, 본인과 민간인들이 [ 여기서 남굴사 ] 주장하는 내용은 땅굴이 아니다라고 회신문이 왔습니다.  그럼에도 본인 김 진철 목사가 국방부 관계자들에게 승복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북한군의 땅굴이 발견된 현장에서 북한군이 막아둔 돌, 소위 역대책한 화강암을 포크레인과 프레카를 동원해서 2003년 3월 1일부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작업 과정에서 증황물들이 나왔습니다.  그 증황물들을 소개합니다.  2003년 3월 6일 쇠파이프와 우비 조각 두 개 ,한 조각에는 인공물이 붙어서 나왔습니다.  인공물을 분석한 결과 콘크리트 성분이라고 한국화학연구소에서 3월 18일 날짜로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 때 돌 깨는 장비가 프레카입니다.  프레카 장비 기사 김 종원 사장, 포크레인 기사 배명호 사장이 증인들입니다.  이들은 이 지역사람들이 아니고 외지 사람들입니다.  2003년 3월10일 무씨앗 봉지를 건져 올렸습니다.  2003년 3월 11일 구리합금으로 된 호미를 건져 올렸습니다.  현장 자금 사정으로 부득이하게 3월말쯤에 현장 장비를 철수시켰습니다.  그 때부터 본인 김 진철 목사 [ 현장본부장 ], 최 덕진 집사 [ 현장작업팀장 ], 하 진수 집사 [ 재정부장겸 총무 ] 셋이서 수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2003년 5월 5일 와샤 [ 기계 부품 ]이 발견되었습니다.  2003년 5월 18일-6월 19일까지 땅굴 라운딩 작업을  했습니다.  그 작업에 지역장비를 사용했습니다.  기사 이름은 송 부권씨와 김 정현씨입니다.  2003년 6월 2일날 송 부권 사장님과 최 덕진 집사님, 본인 김 진철 목사가 땅굴 현장에서 화강암반 작업도중에 밧데리를 발견했습니다.  본인보다도 지역 장비 기사인 송 부권씨가 더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국내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밧데리였기 때문입니다.  2003년 6월 19일 방수용 건전지를 건져내었습니다.  그 때 장비 기사 이름은 김 정현씨입니다. 
  이러한 증황물에 대해서 단 한 번도 확인하지 않고 증황물을 건져올린 증인조차 단 한 번 만이라도 만나지 않은 채, 화성땅굴은 북한의 땅굴이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국방부관계자들에게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다시 한 번 기독교연합신문에 실린 노 무현 대통령 각하께서 지시한 화성땅굴에 대한 내용을 확인한 후 대통령각하께 3번째 탄원서를 올리는 것입니다.
꼭, 김 진철 목사를 만나주세요.  노 무현 대통령각하 청와대 비서진을 국방부 탐지과에 보내지 마시고 화성땅굴 현장과 현장 가까이 살고있는 김 진철 목사를 꼭 만날 수 있도록 지시해주세요.  아니면 본인 김 진철 목사를 청와대로 초청해 주실 용의는 없으십니까.?  국가안보가 건강해야만 건강한 대통령으로 국가와 국민을 이끌 수가 있습니다.  화성땅굴은 진실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각하.  비서진들이 국방부 탐지과의 보고를 받았다면 분명히 이러한 말을 할 것입니다.  " 3m 남았다.  이제 1주일이면 밝혀질 것이다.  현장에 오신 교계 지도자나 일부 정치인과 그들의 비서진들이 2003년 1월 10일 - 2월 중순까지 현장 작업을 총괄했던 최 민용 본부장의 말을 믿고 신뢰를 했습니다.  본인 김 진철 목사는 현장 기사와 인부들을 저가 시무하는 매송영락교회에서 아침과 점심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현장본부장인 최 민용 집사님의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 공사는 한국 교계 선교헌금 1억 2천만 원을 지원 받아 작업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일반 시민의 시각으로는 뚜렷한 증거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부터 교계 지도자들의 관심이 멀어졌습니다.  또한 정치권에서는 현 한나라당 총무이신 홍 사덕 의원님께서 많은 관심을 가져 주었지만 그 역시 관심이 멀어졌습니다.  또한 인근 지역인 수원기독교연합회까지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수원지역에는 기라성 같은 본 교단 선배목사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최 민용 본부장님께서 하신 작업라인에서 큰 성과를 얻지 못한 그 이유를 본인 김 진철 목사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현장보존을 위해 고 정지용 선생님께서 최초로 발견한 지점을 공격하지 않고 7-8m 떨어진 곳에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때 최민용 본부장님께서 주장한 것이 광장라인입니다.  본인 김 진철 목사가 현장본부장으로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최 민용 본부장님이 말씀하신 땅굴광장이 맞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당시로서는 눈에 보이는 증황물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교계 지도자들이나, 현장에 오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럼, 무엇이 최 민용 본부장님께서 말씀하신 광장라인인가.  그 사실을 본인 김 진철 목사가 두 달 동안 수작업을 하면서 그 증황물을 찾아내었던 것입니다.  정면에 보이는 가공된 화강암과 좌, 우측의 푸르스름한 인공암석이 그 증거입니다.  포크레인과 프레카로 작업했던 그 동안은 이 모든 것이 흙으로  덮혀 있었습니다.  이 부분을 수작업으로 두 달 동안 청소한 결과 드러난 현상입니다.  새벽예배를 마치면 아침을 먹고 현장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이 그 동안의 제 일과였습니다.  화성 땅굴현장에 김 진철 목사의 손길이 안 묻은 곳이 없습니다.  대통령각하.  이것이 바로 김 진철 목사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심정입니다.  결국 최 민용 본부장님은 2003년 2월 20일쯤 원인 모르게 쓰러져 수원중앙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계획이 서지 않았고 또한 현장을 이끌고 갈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시간이 1주일 가량 지나갔습니다.  나는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화성땅굴의 진실을 묻기는 너무나도 허망했습니다.
그래서 회장님이신 김 철희 장로님께 건의를 했습니다.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녹강으로 처리해 두었던, 고 정 지용선생님께서 발견하신 땅굴라인을 그 위치에서 공격하자고 강력하게 건의했던 것입니다.  그 비용을 교회에서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지용 선생님께서 해 오셨던 방식을 따랐습니다.  나는 다시 한 번 다우징 기술자 4명을 초청해서 현장  보존해둔 곳을 다우징으로 정밀탐사를 했습니다.  그 때 동참한 다우징 기술자분이 " 문 효상씨, 김 종우씨, 이 준씨, 차 소구씨 "  4분이 탐사한 부분에 대해 동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때가 2003년 2월 27일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동의를 얻어 2003년 3월 1일날 공격을 시작했고 그 라인에서 현재의 모든 증황물들이 나왔던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지금 교계나, 남굴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계나 또한 국방부 관계자들까지 충분치 못해서 저에게 전화를 통해 “ 정말로 목사님께서 화강암에서 건져 올린 증황물입니까? ”
라고 국방부 탐지과에서 그리고 이번에 출범한  한국교회 안보대책협의회 실무진들이 저에게 물어보는 내용들입니다.  앞으로 화성땅굴의 진실을 이야기하시는 모든 분들이여!  이 부분을 꼭 염두에 두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나온 증황물들이 외부에서 가져다 놓았다가 건져진 것이라는 국방부 유언비어에 속고 맙니다.  그래서 지금도 남굴사를 방해하고 화성땅굴의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단골로 유행시키는 말이 “ 3m 남았다고 해놓고, 1주일이면 확실한 증거물이 나온다고 해놓고 ”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화성땅굴은 다우징이란 능력이 보여준 쾌거입니다.  왜냐하면 2003년 2월 27일날 네 분의 다우징 기술자들의 탐사 결과 동일하게 나왔던 곳이 바로 고 정지용 선생님께서 발견한 지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지점에서 2003년 3월 1일 - 6월 19일까지 김 진철 목사가 현장본부장으로 일하면서 증황물들을 건져 올린 것입니다.
  본인 김 진철 목사는 비록 모태 신앙은 아니었지만 유치원 때부터 교회를 알았고 교회를 통하여서 세상을 알았습니다.  또한 주일학교, 학생회, 청년기의 신앙까지 교회에서 단 한 번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또한, 일반 대학을 선택하지 않고 신학대학을 곧 바로 갔습니다.  신학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하고 군에 갔다 와서 복학을 했고, 신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전도사 사역을 나갔습니다.  전도사가 된 후 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12년이란 긴 세월동안 변함없이 단 한 번도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내 남은 인생도 목회자로서 열심히 살아가고자 합니다.  목회자의 생명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본인 김 진철 목사가 화성땅굴을 가지고 위증을 하고 있다면, 시골 목회에 3천 6백만 원은 참으로 큰 돈입니다.  이 엄청난 물질을 어떻게 화성 땅굴현장에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화성땅굴에 관여할 때 40여 명의 성도들이 이제 20여 명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본인 김 진철 목사는 7개월 동안 화성땅굴현장에서 새벽부터 늦은 저녁시간까지 일했습니다.  제가 시무하는 교회도 중요하지만, 교회보다도 나의 조국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화성땅굴에서 발견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발견된 화성땅굴은 북한의 명백한 남침용 땅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각하!
  화성 땅굴현장에서 현장본부장으로 일을 하고 직접 증황물을 건져 올린 39세의 젊은 목사의 진실을 꼭 믿어주셔야 합니다.  진실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국방부는 화성 시청을 통해 2003년 8월 12일날 현장을 묻으려고 합니다.

  노무현대통령각하!
  국방부는 화성 땅굴현장에 단 한 푼도 지원하지 않은 채 이론만으로 무조건 아니라고 합니다.  민정수석을 보내주시든지 아니면 대통령각하께서 현장에 친히 방문해주시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김 진철 목사 연락처 031-293-2314  [교회]    HP 010-8722-2314
  노 무현 대통령각하께  세 번째로 올린 탄원서입니다.
꼭 읽어주시고 화성땅굴의 진실을 밝혀주시길 다시 한 번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청와대 홈페이지를 아신다면 꼭 올려주세요.
  여러분의 작은 관심이 이 나라를 살리는 큰 밑거름이 됩니다.
                                      매송영락교회 김 진철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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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현장본부장으로 일했던 김 진철 목사의 마지막 결산보고서
글쓴이  김 진철 등록일  2003-11-14 [00:14] 조회수  319

  화성땅굴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입니다.
1] 땅 속 깊은 곳에서 수중 녹음기로 녹음한 결과 사람 목소리와 작업하는 기계소리가 잡혔습니다.  참고로 - 녹음된 시간은 2002년 11월 8일 저녁 10시 - 11월 9일 아침 8시까지 [ 지하20M 지점에서 녹음됨 ]  현장 증인 고 정지용 선생님.
  본인이 시무하는 매송영락교회에서도 2003년 4월 7일 새벽 5시경 예배 도중 땅 속에서 기계소리를 들었습니다.
2] 땅 속에서 절단된 와이어 줄이 나왔으면 이만한 증거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  지역 사람들에게 보여주니까 다들 놀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내에서는 이러한 와이어 줄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 2002년 11월 15일 [ 현장본부장 최 민용, 홍 광락 증인 ]
3] 돌의 면이 잘 다듬어진 상태로 암반 깊은 곳에서 무수히 나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화강암은 고온의 높은 용암 [ 마그마 ]으로 만들어지므로 사람이 가공을 하기 전에는 다듬어진 화강암이 자연 상태로는 절대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현장에 있는 화강암은 가공된 화강암으로 차곡차곡 쌓여져 있습니다. [ 일명 시루떡 모양을 한 채로 ]  참고로 - 2003년 5월 5일 김 진철 목사가 현장에서 작업 중에 발견한 일명 광개토왕비와 유사한 형태의 돌이 이를 설명해 줍니다.
4] 굵기가 2 -5cm인 자갈이 롯드가[ 암석을 뚫는 기계 장치 ] 땅속을 뚫고 들어갈 때 암반 속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롯드가 암반을 갈고 들어가면 고운 돌가루가 나와야 하는데 굵은 자갈이 나왔다는 사실은 땅 속의 공간을 없애려고 롯드 밑에 작은 암석으로 쌓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 최 민용 본부장과 롯드 시공업자의 산 증언.
5] 암반 속에서 시멘트 덩어리가 묻은, 사람이 입는 우비 조각이 나왔습니다.  참고로 - 2003년 3월 6일 현장본부장 김 진철 목사와 현장 장비기사 김 종원 사장님이 발견하고 건져내었습니다.
6] 잘 다듬어진 화강암 표면에 무수한 놋쇠 자국이 있는 돌들이 무수히 많이 나옵니다.  돌위에 나 있는 많은 기계자국은 땅굴을 파는 땅굴 공구의 흔적으로 추정됩니다.  참고로 - 현장본부장 김 진철 목사가 현장에 오신 교계 목사님들께 약 100개 이상 전해 드렸습니다.
7] 땅 속에서 나온 호미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구리로 도금한 호미입니다.  본인 김 진철 목사의 추정에 의하면 돌과 돌 사이를 쌓을 때 사용하는 접착제 성분을 섞는 데 사용한 도구가 아닐는지, 왜냐하면 현장에서 화강암 사이에 흰 이물질이 많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상태는 흙이 있어야 합니다.  참고로 - 2003년 3월11일 현장작업 기사 배 명호 사장님, 현장본부장 김 진철 목사 외 여러 명이 현장 입회하에
일을 하던 중에 현장 다우징 기술자 차 소구 집사님에 의해 발견, 건져졌습니다.  또한, 2003년 3월 10일 하 진수 부장이 발견한 은박지 무 봉지가 [ 국산이 아닌 영문자로 표기 ]
왜! 화강암 돌 속에서 나온단 말입니까?
8] 역대책한 무수한 인조암석과 시멘트가 묻은 화강암이 깊은 땅속에서 마구 나옵니다.  인공 암석은 화강암 가루를 배합해서 만든 가짜 암석이어서 언뜻 보면 일반 암석 같으나, 망치로 깨보면 푸석거리면서 잘 깨지고 무게는 가볍고 경도가 무른 것이 특징입니다.  참고로 - 화강암은 가축에 비유하면 소와 같습니다, 즉 버릴 것이 없는 돌입니다.  현장본부장 김진철 목사는 2003년 5월 16일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 거산리 화강암 채석장인 “ 동아석재, 일신석재 ”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석재에 관련된 공장들이 있었습니다.  쓸모없는 화강암 조각을 가지고 모래를 만드는 것까지 보고 왔습니다.
9] 지하 20M에서 대한민국 땅에서 생산되지 않는 방수용 건전지와 북한산 건전지, 그리고  기계 부속품인 와샤가 나왔습니다.  참고로 - 북한산 건전지는 2003년 6월 2일날 현장본부장 김 진철 목사와 작업팀장 최 덕진 집사가 지역 장비기사 송 부권사장님과 일을 하던 중에 발견되었습니다.
10] 언덕 위에서 바라보면 정면에 있는 화강암의 절리면이 가로로 일직선으로 잘 보입니다.
그 절리면의 선을 보면 지표의 상층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8단계까지 올라 있습니다.  그 각도가 거의 45도 각을 이루는 것이 특징입니다.  뜨거운 용암 [ 1000 -1200도 ]으로 모든 것이 녹는데 일정한 각도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 화강암의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화강암을 일명 통돌이라고도 말합니다.  바로 용암 덩어리가 화강암입니다.  현장에 쌓여있는 8단계의 화강암 중 제일 윗부분에 보면 가공된 기계자국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11] 현장본부장 김 진철 목사와 현장작업팀장 최 덕진 집사가 2003년 5월 19일 - 6월 20일까지 인조 화강암으로 막은 땅굴 입구를 찾아서 작업을 했습니다.  [ 역대책으로 북한군들이 ] 마지막으로 막아놓은 땅굴 입구의 모양이 다이아몬드 형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윤 여길 박사님도 확인했습니다.  또한 지역 장비기사들도 확인했습니다.  이 부분을 약 3M 정도까지 김 진철 목사와 최 덕진 집사가 직접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김 진철 목사와 최 덕진 집사 밖에는 없습니다.  2003년 6월 26일날 국방부 탐지과의 현장 방문시 김 진철 목사 본인이 직접 증언하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제 공식적으로 이 진실을 말하고자 합니다.  땅굴 안에도 45도 각도로 막았습니다.  그렇게 역대책한 돌들이 약 20 - 30cm 간격을 유지하면서 쌓아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중간 자연석 [ 오리지날 화강암 덩어리 ]를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나왔을 때는 망치나 착관기, ,중장비도 도저히 깨뜨리지 못해서 일부 0도 사용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본인이 데리고 일을 한 지역장비 기사들이 증인입니다.  정상적인 화강암은 절대로 망치로 깨어지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중장비로 작업현장에서 일하셨던 장비기사들의 산 증언입니다.  그런데도 망치로 깨어 보면 담을 쌓은 벽돌이 깨어지는 것처럼 정확하게 부스러져 나왔습니다.  얼마나 잘 깨어지던지 너무 무리하게 오함마 망치질을 하다가 본인 김 진철 목사가 목을 다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12] 절대로 화강암 밑바닥에는 평면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8단계로 쌓아진 돌들 전부가 밑바닥이 연마되어 있는 것이 화성 땅굴의 특유한 특징입니다. 
13] 땅굴 현장 양쪽에는 양파처럼 벗겨지는 퍼런색의 인공 암석이 주위와 안 어울리게 버티고 서 있습니다.  인공 암석이 황토암 [ 퇴적암 ], 아니 화강암과 같이 나오는데 왜!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이곳이 무슨 암석 전시장입니까?  이 부분은 지리학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좁은 환경에 다양한 암반이 존재한다는 것은 지리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천천리 지역은 보편적으로 사암지역입니다.  절대로 석회암 지대도 아닙니다.
국방부 탐지과 조 병용 서기관은 본인 김 진철 목사와의 통화 중에 이 부분에 대해서 이러한 설명을 했습니다.  화강암도 연한 화강암이 있다고 말입니다.  본인은 그에 대해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연한 화강암이 호미에도 깨어지냐고---[ 참고로 조서기관과 7월 초 전화 대화 ]  천천리 지역에서  화강암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하 40M 이상으로 내려가야 한답니다.  지역 지하수 업자의 증언입니다.  지금 화성 땅굴 현장에 8단계로 쌓아진 화강암이 지표상에서 몇M나 되겠습니까?  아마도 제일 위층을 기준해서 보면 15M 밖에 더 되겠습니까?
14] 작업을 하던 중에 무수한 기계자국이 인공 암석이나, 화강암의 표면에서도 나왔습니다.
15] 풍화가 안 된 자연 상태의 화강암은 절리면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화강암은 뜨거운 용암으로 만들어지며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고열로 녹여 한 덩어리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풍화된 화강암에 절리면이 있다면 돌 틈으로 빗물이 들어가 얼었다 녹았다 해서 암반이 수축 평창하므로 화강암의 절리면은 거의가 수직으로 불규칙한 선을 이룬다.  그런데 풍화가 안 된 깨끗한 화강암에 왠 가로의 절리면이 그렇게 많을 수 있으며, 바로 이런 것이 화성 땅굴 현장에 있는 화강암의 특징입니다.  그것도 지하에서 지상 쪽으로 8단계까지 쌓았다니 너무나 이상하지 않습니까?
16] 큰 돌도 자세히 살펴보면 조각조각입니다.  또한 벽돌처럼 예리한 각으로 절단해서 쌓았습니다.  자연 상태라면 전체가 온통 화강암으로 조각이 아닌, 통째로 이루어져야 원칙이 아닙니까?  전라북도 익산, 경기도 포천의 화강암 채석장에 가보면 누구나 손쉽게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본인 김 진철 목사가 화강암 채석장에 갔다 온 후부터 화성 땅굴 현장에 있는 화강암은 북한군이 가공해서 쌓은 것이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장본부장으로서 땅굴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화성 땅굴이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라는 16가지 증거를 재정립해 봅니다.  15년 동안 온갖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북한의 남침용 땅굴의 진실을 이야기하셨던 고 정 지용선생님의 죽음은 결단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진실을 이야기 하실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2003년 3월 26일 모 대학 지질학 교수님께서 현장에 오셔서 현장본부장인 본인 김 진철 목사에게 마지막으로 주고 간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목사님! 현장에 있는 화강암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할 때 이렇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도와주고는 싶으나, 신변 보장이 안 되어서 못 도와주신다 ”고 말씀하시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안보의 현실입니다.
  이제 화성 땅굴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라는 이 진실을 오직 하나님의 역사에 맡기면서 목회자의 자리로 돌아 왔습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껴 봅니다.  그 동안 부족한 김 진철 목사를 위해서 기도해주신 선배 목사님과 많은 애국시민 여러분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글을 올리면서,
또한 현장본부장으로서 현장에서 같이 일을 했던 많은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을 영원토록 기억하겠습니다.  일하는 과정 속에서 김 진철 목사의 부족함을 오래 기억하지 마시고 이 시대 목회자의 한사람으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뜨겁게 사랑한 목사로 기억해주시고, 또한 부족한 부분도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으로 품어 주시길 바랍니다.  본인 김 진철 목사는 땅굴 일을 하다가 많은 목사님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 목사님이 이러한 일도 하느냐 " 그 물음에 나는 마음 속으로 울었습니다.  또한 그들을 통해서 선배목사님이나 후배 목사님들 또한 친구 목사들에게까지 왕따를 당했습니다.  그 만큼 안보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참 어렵고 힘들다는 사실을 땅굴 현장에서 새롭게 느껴 보았습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어느 선배 목사님께서 이러한 말씀으로 위로해 주셨습니다.  목사가 되기까지 7년의 신학공부를 한 것보다도, 화성 땅굴현장에서 현장본부장 4개월 동안 한 것이 7년 동안 신학공부 한 것보다도 더 위대한 일이라고 위로 해주신 그 선배 목사님의 깊은 의미를 나는 오늘 알았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부족한 목사이지만, 화성땅굴의 진실을 밝히는 데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해주신 것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동안 남굴사와 나의 조국을 아끼고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이, 우리 모두 승리하는 날까지 건강하시길 늘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화성 땅굴현장에서 현장본부장으로 일을 했던 김 진철 목사가 겨울이 오는 이 밤에 마지막 결산 보고서를 올립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경기도 화성땅굴 현장본부장 김진철목사 [010-8722-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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